그러면 오늘의 정원은 어떠한가.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오늘날 파리의 정원은 이상과 현실의 굴레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

모두가 함께 사는 도시를 꿈꾸며, 공공을 향해 열어야 하는가 아니면 안전과 프라이버시에 장점이 있는 전통적인 폐쇄형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가... 결코 쉽지도 않고 정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이 근원적인 두 질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곳이 오늘의 파리이다.

단순화가 내포하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몇가지 특이한 정원구성 경향을 훔쳐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타입이 정원에 지붕을 덮어서 '반 내부화' 하려는 경향이다. 이 논리는 기왕에 사유화하는 것이라면 지붕까지 덮어서 끝까지 한번 가보자...라는 식의 비유도 가능할 것같다. 특히 최근들어 구조 기술과 재료 개발에 힘입어 놀라운 정원의 지붕들도 자주 목격된다.

한 건물의 내부 홀을 보는 것같은 착각이 들겠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내부인 곳이 아니었다. 몇 번의 개조에 의해 점점 내부화가 진행되더니 마침내 지붕까지 덮혀서 완전 내부가 되었다. 이곳은 파리의 중심가(2구)에 있는 한 리용은행 본사옥의 실내화된 정원이다. 건축가 : Williams B Van Der Boijen, 1878

보잘 것 없던 연립주택의 좁고 지저분했던 정원이, 지붕으로 덮히면서 멋진 변신을 했다. 오래된 주택를 현대식으로 개조하면서 지붕도 고풍스럽게 설치하니 마치 건물과 정원지붕이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것만 같다. 건축가 : Patrick Mellett, 1997

구조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내부화된 정원의 예가 바로 이런 것이다. 파리에 있는 정원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은 굳이 파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체 유럽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유행이다. 사진은 벨기에의 한 호텔의 지붕덮힌 정원인데 건축가 Jorg Schlaich가 이 현대적인 지붕계획을 담당했다.

위의 호텔정원 지붕의 건축가가 최근에 완성한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의 중정 지붕은 현대건축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잘 보여준다. 이제 유리와 철이 어우러지는 경량구조는 기존의 상식(구조, 시공방식...)을 훨씬 뛰어넘어 있다. 마치 유리가 아니라 가벼운 비닐을 덮어놓은 것 같은 느낌마져 준다.

지붕뿐 아니라 정원의 벽까지도 유리벽이 쳐졌다. 혹시 구조에 관심이 있으면 사진을 자세히 보라. 유리벽과 유리지붕을 지지하고 있는 어떤 고정된 구조체도 없다. 단지 몇 개의 케이블이 모든 유리를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벽과 지붕의 구조는 피터 라이스(Peter Rice)의 RFR이 담당했다.

지붕을 덮는다고 해도, 반드시 정원이 실내가 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의 작품이다. 정원은 거대한 차양으로 항상 아늑한 그림자가 지고 정원은 인공 호수와 이국적인 조경으로 꾸며진다. 정원을 반외부로 두되, 역시 정원 사용의 사유화도 고려된 설계안이다. 그림은 한 항공사사옥 투시도. 건축가 Chaix et Morel, 2003.

이 지붕으로 덮힌 정원의 사촌쯤 되는 또다른 건축공간 하나를 더 살펴보자. 건축을 전공으로 한 독자가 아니라면 '아트리움 atrium'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는 '홀 hall'이라는 명칭과 혼용되곤 하는데 좀더 전문적으로는 '건물내부의 온실화된 (자연광이 들어오는) 대규모 홀'이라고 설명하면 이해의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대규모호텔이나 큰 빌딩같은 곳에서 자주 사용되곤 하는데, 잘 알려진 미국계 체인식 호텔인 하야트hayatt는 전세계에 지어지는 자신의 호텔내부에 이 중정식 아트리움을 자신의 트래이드 마크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론적으로 아트리움은, 건물이 커지면 커질수록 실내공간의 채광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위 그림처럼 폭이 넓은 건물 가운데를 비워내고 유리지붕으로 비바람을 막게 되면, 건물가운데로 쏟아지는 태양빛으로 건물내 대부분 공간이 자연채광의 해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소개된 지붕 덮힌 실내정원과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생각해보자. 차이점은 간단하다. 아트리움은 한 건물내에 비워진 공간이고, 정원은 다른 여러건물이 그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트리움이나 정원이나 차이점을 발견하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 대규모 건축물에서 이 아트리움의 근원이 어디서 출발했는가 추론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정이다. 동양인으로서 혹은 한국인으로서 서구식 호텔의 대형 아트리움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이 장소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받는 공간 경험적 충격과, 서양인으로서 매일 정원이 딸린 공동주택에 살다가 이 곳에 들어올 때 받는 느낌은, 너무나도 그 익숙함에 있어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추론도 도시적 정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대 건축의 아트리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채광과 위생등 기능적 문제가 정말 문제였다면, 아트리움 (가운데 빈공간) 을 굳이 설치해야 하는 폭이 넓고 낮은 하나의 건물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폭이 좁고 높은 한 건물이거나 혹은 폭이 좁고 낮은 두 건물이면 이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아트리움이 태어난 진짜 이유는 서양의 도시 정원이 함축하고 있는 도시적/사회적 맥락에 기인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 숨겨진 맥락을 이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