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의 꿈인가, 집단의 광기인가 (2)
 

먼저 프랑스 사회에서 '슬럼 (불어로는 게또 ghetto라고 한다) '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프랑스는 이민족을 받아들이는데 서방사회에서 그나마 호의적인 국가이고, 또한 아프리카,아랍,아시아 인들이 많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회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영웅, 지단 마저도 아랍계이니, 이 나라에서 외국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아프리카 피난민을 받아들여 지금 프랑스에서 흔히 보는 흑인은 주로 북아프리카 (모로코, 알제리) 계이며, 중국 화교와 과거 식민지 베트남,캄보디아계 또한 외국계로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이 법으로 금지된 나라이며, 프랑스 인들의 외국인 혐오증 또한 상대적으로 미약해서 미국처럼 소수 민족의 불만이 표면적으로는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출신이 다른 민족끼리의 '공동 생활 방식'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이 점이 피카소 집합주거의 슬럼화를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다시 말하자면, 생활방식이 다른 흑인과 같이 사는 것이 힘들어서 백인은 떠나게 되고, 그 속도는 점점 가속도를 붙히면서 어느새 백인은 이 동네에 들어가기 조차 꺼려하는 흑인과 외국인의 도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성privacy를 중시하며, 자신의 집에 대한 독립성과 안전성에 무게를 두는 프랑스인의 생활 습성을 고려하면, 밤 늦게까지 음악을 켜두고, 복도나 광장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는 대중적 성향의 타 민족과의 동거의 어려움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점 외에도 이 건물의 문화적 실패에 대해 건축적으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건축가 뉘네즈가 간과한 점이자, 태생적 결점인 '아름다운 대중의 광장'이다.

위의 광장 사진을 유심히 본 사람이면, 분명 집합주거의 앞마당같은 광장인데, 전혀 사람의 흔적이 없음을 느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광장은 조경 전문 협력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건축가가 직접 계획을 한 곳이다. 물론 이유는 주위의 건축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기 위한 예외적인 결정이었다. 건축가는 과장된 형태의 주위 건물을 시각적으로 안정시키기 위해, 광장은 엄격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상기해야 할 점은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와 사용의 효율성은 서로 상반된 문제 라는 것이다. 이 광장 위에는 거주자가 즐길 만한 그 어떤 시설이 없다.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를 주는 조형물과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몇 개의 벤치만이 있을 뿐이다.

이국적인 건물과 높은 수준의 광장 속에서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매일 자신이 살고 있는 환상적인 건물만 감상하고 놀기에는 그들은 너무 어리지 않은가.

 필자가 관찰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광장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만이 아니다. 광장을 둘러싼 모든 건물의 거주자는 오직 이 광장으로만 쳐다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광장에서 건물을 보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외관에 비해, 광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어떤 중간단계의 거름 장치없이, 그대로 거주자에게 영향을 준다. 특히나 광장에서 어린이들이 스포츠나 집단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광장을 둘러싼 모든 주거에 그대로 소음이 전해진다.

그래서 광장의 실현은 어려운 것이다. 광장을 둘러싼 주위의 건물 형태뿐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개개의 주거의 상관 관계에 대한 고도의 연금술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 광장의 경우 후자는 실패했다는 뜻이다. 건축가는 이 광장이 '축제와 공공의 광장'이 되길 바랬지만, 이 광장의 공공성과 주거의 개인성 사이에는 상당히 미묘한 상반 관계가 있음을 몰랐던 것일까?

또한 이 광장은 보행자와 거주민을 위해 차가 없는 순수 보행자 공간으로 계획이 되었지만, 자신의 집에 짐을 실어 날라야 하는 거주자는 불법을 무릅쓰고 이 광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불법은 편리하므로 빨리 퍼진다고 했나? 이제 이 광장은 불법 주차 차량으로 인해 거대한 불법 주차장으로 변했다. 어떻게 '자신의 집 앞'에 자신의 차를 주차 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주거자의 욕구를 매일매일 주차 단속원 몇 명으로 막을 것인가?

이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건물 입구의 '자동차 출입금지'란 경고가 무색하게 휴일이면 그나마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노는 아이들마저 쫓아 버리며, 무단 주차가 광장을 뒤덮어 버린다. 이미 건축가가 예고한 '대중과 축제의 광장'의 의미는 상실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의 광고적 성격의 입면과 형태'에 대한 문제이다. 비록 이 건물이 신도시의 출발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를 했을지는 몰라도, 과장된 형태의 입면은 차후 지어지는 주변 건물과 맥락적 이질감을 심하게 발생시킨다. 근본적 문제는 차후 개조의 여지마저도 없을 정도로 '적대적으로' 독창적 형태 라는 데에 있다.

도시적 콘텍스트를 중시하는 이 나라의 도시 전통으로 보자면, 이후 지어지는 모든 건물이, 이 건물을 따라 '가우디 풍'이나 '타우노 풍'의 표현주의 형식으로 지어질 대안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지금의 결과는 이미 도시맥락이란 명제는 혼란해 보인다.

최근 완성된 초등학교 교사와 피카소 집합주택, 극단적인 대조의 미는, 도시라는 의미에서는 사진의 그것과는 틀린 것이다. 이미 주위 건물과의 컨택스트 존중의 질서는 이곳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