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추상성 (1)
 

프랑스 교육체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의 3대 국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중 평등이란 개념을 상기해야 한다. 1968년 프랑스 전국을 휩쓸었던 프랑스 학생혁명 이후, 그들은 위계적인 대학 시스템을 포기하고 이른바 동등하고 전문화된 학교 체제로의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말하자면 프랑스 내에 입학의 문턱이 높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그런 '명문대학'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소르본 대학마저도 인문, 문학 쪽으로 특화된 파리4대학이란 공식명칭으로 불릴 뿐이다.

대학과는 별도로, 에꼴 école (영어로 School에 해당함) 이란 좀 특이한 학교들이 존재한다. 대학Université이 이론과 학문에 중점을 둔 교육기관이라면, 예술, 건축, 음악등 실기의 성격이 강한 분야는 대학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의 전문학교로써 존재한다. 예를 들면 현재 파리에 여러 건축 에꼴이 존재하며, 그 에꼴들은 각각 도시, 조경, 주거등.. 각각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처럼 매년 대학별로, 학과별로 순위를 매기는 등의 방법은, 프랑스에서는 의미도 없고 그러지도 않는다. 평등에 입각한 전문성의 나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수많은 학교가 존재한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한 대학 내에 많은 과가 존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각각의 대학과 에꼴은 그 자체의 특수성을 가지고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이런 학문적 전통에서 전혀 새로운 대학 도시가 탄생하니, 이른바 '학교 실험장'이라고 불리는 시떼 데카르트이다. 각 학교간의 연계발전를 목적으로, 산재된 프랑스의 몇 개의 대학과 에꼴들을 한 곳에 모아, 또 적극적인 산학협동을 위해 대기업의 연구소와 정부 출자 연구 기관들을 인근에 설치하여 '연구, 교육, 정보 단지'의 개념으로 새로이 태어난 것이다. '프랑스식 캠퍼스' 개념이라고 할까.

마른라발레의 한 중간,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시떼 데카르트 Cité Descartes, 교육시스템의 새로운 시도뿐 아니라, 건축적 수준에서도 많은 새로운 시도가 진행 중이다.

도시의 대표적인 학교들은 도미니크 페로 Dominique Perrault가 설계한 국립 전기,전자 학교 Ecole Supérieure des Ingenieurs en Electronique et Electrotechnique, 그리고 베르나르도 츄미 Bernardo Tschumi의 설계로 1998년 문을 연 마른라발레 건축,도시 학교 Ecole d'architecture, 그리고 오늘 소개될 Chaix & Morel 이란 동년배 건축가에 의해 당선된 국립 토목 학교 Ecole des Ponts et Chaussées (이 불어를 직역하면 '다리와 땅의 학교'가 된다. 멋진 이름이다. 다리와 땅이란 비유처럼 토목이란 개념을 잘 표현하는 단어가 있을까) 그리고 약 10여개의 에꼴, 대학, 주변의 수많은 연구소와 함께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설계경기의 요구 사항은 쉽지 않다. 자매학교 격인 국립 지질학교 Ecole des Sciences Geographiques과의 학문적 연계를 위해, 설계경기는 두 학교를 동시 수용하지만, 기능적으로는 분리된 형식을 요구한다. 또한 학교 건축의 태생적인 문제인 공사비와 유지비의 최소화해야 한다는 제약 속에서, 프랑스 최고의 공학학교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 또한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미묘한 요구에 Chaix와 Morel은 볼트라는 형태를 사용하며 두 기능의 분리를 이루어 내며, 두 학교를 하나의 건물 속에 포함시킨다. 세 개의 단순 입방체와 그 입방체들을 관통하는 볼트 지붕에 덮혀진 거대한 길. 많은 기능적 다양성을 암시하는 이 제안은 두 번째 요구조건인 공사비의 절감과 상징적 이미지의 실현과도 관계있다.

입구에서 내부를 관통하는 길을 본다. 이 길의 좌,우로 토목학교와 지질학교의 기능이 구분된다. 길의 지붕은 세 개의 입방체를 관통하는 두 개의 유리볼트구조이다. (사진제공: Atelier d'architecture Chaix Morel et Associes)

유럽의 도시 문화에서 '길'이라는 의미는 '동선의 순환'이라기 보다는 '커뮤니케이션과 집회의 장소'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 만큼 개개인의 공간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공공의 장소인 길은 상대적인 의미에서의 모임과 공공성의 발현이란 주제가 항상 건축가들의 관심사였다고도 볼 수 있다. "프랑스 최고의 학교라는 자폐적 자존심을 버리고, 나와서 서로 대화하라"는 뜻이었을까? 실제로 이 길은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항상 모든 학생들이 모이는 그곳에 항상 논쟁과 토론이 있는 거대한 광장이 되어있다.

볼트 지붕아래의 거대한 실내 광장. 방대한 스케일이 방문자를 놀라게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과 교직원들로 하루에도 몇 번씩 광장의 고유기능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Atelier d'architecture Chaix Morel et Associes)

실제로 그들의 건축언어가 많은 현대 프랑스 유명 건축가들처럼, 공간 지향적이나 조형 지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요즘의 환경에서, 그들이 꾸준히 지키고 있는 기능성 위주의 공간과 냉정하기까지 해 보이는 차분한 조형이 그들의 건축적 정체성 Identity를 대변한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들의 장점은 구조의 기발한 착상과 재료의 고려된 설치에 기인한, '경제적 건축 방법'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공사비를 아끼려는 건축주의 마음보다도, 그들은 더 치열한 자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 가격에, 이 수준의 건축으로' 그들은 그들의 사회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획득하고 있다. 우리는 잠시 후 왜 그들이 새로운 구조 방식을 개발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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