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20010213

프랑스 5개 공중파 텔레비젼 방송 중, 다큐멘터리와 수준 높은 외국영화를 주로 방영하는 아떼Arte라는 방송이 있습니다. 황금 방영 시간인 오늘 저녁 9시에 어떤 한국 입양아가 성인이 된 후, 가족을 찾고 싶은 마음에 한국을 방문한 여행을 동행 취재한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위의 몇 가지 글처럼, 나에게도 친한 현지 입양인들도 많고, 어쩌다 가족을 찾아준 친구도 있기 때문에 이 방송에서 눈을 땔 수 없더군요.

결국 화면 속의 그녀는 가족을 찾지 못하고, 같은 처지의 다른 부모들을 몇 명 만나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자신의 기록이 정확하게 보관된 곳을 못찾았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을 입양 시켰던 부모들 입에서는 항상 똑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한국에서는 자식을 성공하도록 키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입양을 보내어 조금이라도 좋은 교육과 좋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카메라에 비추어진 어른 들의 입에서는 모두 똑 같은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말도 나오더군요.

"너(프랑스에 입양된 그녀)는 운이 좋은 거야. 만약 한국에 남아서 가난한 집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 보았자 공장에 들어가 돈 번다고 고생만 했을 거야. 그러니 너를 입양시킨 어른들과 친부모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 말을 들은 주인공은 다시 어떤 질문도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아마 이곳의 입양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낀 나조차도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어떤 말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 어른들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키우지 못할 지언정 외국이라도 입양되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어떤 면에서는 옳아 보이기고 너그러워 보이기도 한 이 잔인한 말을..

나에게는 이곳에 친 동생처럼 가까운 현지 입양인이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 어쩌다 그 친구의 가족을 찾아서, 돌아가신 친부모 대신 친형과 친누나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 년 후, 이 친구는 6년전 가족과 자신의 뿌리를 찾으러 갔던 아득했던 첫 한국 방문과는 달리, 다시 친형제들을 '방문하러' 또 친척이라는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가슴 설레며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이번 경우에 나는 한국까지 동행하지 못했지만, 매일 답답한 자신의 심정을 보내오는 이 친구의 메일을 받아보면서 또 한번 북돋는 분노와 슬픔을 눌러야 했습니다.

입양되기 전에 이 친구를 고아원에 강제로 데려주었던, 6촌 이모는 공항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6촌,7촌까지 모두 모인 친척들의 모임에 들어선 이 친구는 또 똑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답니다.

" 프랑스로 입양된 것은 너를 위해서 잘 된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아무 소리도 안 했다고 합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일찍 결혼을 한 누나에게 두 아이가 있습니다. 맑은 눈의 조카들이 이 친구에게 '삼촌! 삼촌!'이라고 부를 때마다 이 친구는 마음 속으로 울어야 했습니다. 자신이 울면 그 모습을 보고, 형과 누나가 가슴 아플까봐 마음속으로만 울어야 했다고 합니다.

2주간의 한국 여행은, 선진국에서 온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맛있는 음식과 좋은 곳의 구경으로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형과 누나와만 지내고 싶어했던 이 친구는 수십명의 친척들에게 둘러 쌓여, 그렇게 정신없이 좋은 음식과 이해 못할 한국 말과 함께 지내고 돌아왔습니다. 나도 이런 따뜻한 대우가 그 친구의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리라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지나가는 말로 이 친구가 내게 그런 메일을 보냈더군요. "차라리 나를 맞아주는 수많은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지나간 그 과거를 쉽게 잊었을 지도 몰라. 근데 그 수많은 가족이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으면서 내게 드는 생각은 '이 많은 가족 중에 나를 보살펴 줄 가족은 한명도 없었단 말인가...' 그것밖에 없었어."

엊그제 이곳으로 돌아온 친구는 내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 형! 밥과 김치, 이제는 지겨워요. 우리 프랑스 음식 먹으러 가요. 김치를 하도 먹었더니 소화가 안 되요. 먼저 프랑스식 에스프레소 커피부터 먹어야 되. 나 변비 생겼어. 씨발... "

결국 프랑스로 돌아온 첫날, 그 친구와 나는 시큼한 치즈 냄새 풍기는 파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포도주와 버터 소스를 올린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물었지요.

"그래, 방문하고 오니 어떻디? 지난 1년동안 네가 생각한대로 여기서 공부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일하며 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니?"

"아니. 나는 프랑스 인이야. 한국인의 생활방식도 이해를 못하겠고, 어떻게 그렇게 일만 하면서 정신없이 사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솔직히 만약에 내가, 함께 자란 프랑스 형과, 한 어머니에서 난 내 한국 친 형 중에 반드시 한 사람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프랑스 형을 선택할 거야. 나는 프랑스 인이니까."

"그러면 만약에 한국의 친형이 너에게, 이제는 자기가 너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한국에서 같이 살자고 제의한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 것 같니?"

"................. 모르겠어, 음, 정말 모르겠어."

18년동안 이 친구는 자신을 이 외로운 외국 땅으로 입양시킨 친 가족을 그리워 하면서, 또 원망하면서 그렇게 자랐습니다. 중간에 한국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지만 혹시 그 가족을 다시 만나면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두려워서 그 기회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도 버리고 살아왔습니다.

분명 행운이었지요. 친 가족을 다시 찾은 것은... 형과 누나가 직접 먼저 이곳을 방문해서 막내 동생을 만나고 가고, 항상 메일로 연락도 주고 받고, 가끔 형은 동생을 위해서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고..

그러나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친 가족과 친척들과 몇 주를 지내고 온 후, 이 친구의 반응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 나는 프랑스 인이다! "

이유는 물론 20여년동안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베어 버린 프랑스인의 사고,생활방식이겠지만, 더 큰 이유는 이번 방문에서조차, 자신이 입양된 이유에 대한, 자신이 이해하고 납득하고 용서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거였지요. 그렇게 친 가족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자라난 자신이었지만, 그 잃어 버렸던 사랑을 받아들이고도 싶었지만, 이 친구가 납득할 어떤 것도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가족'들 속에 쌓여 있었으면서도 말이지요.

경제위기가 닥치고 어려운 시절을 지내고 있지만, 사실 우리자신은 우리나라를 중진국 혹은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발전된 고��빌딩과, 잘 정리된 한강변, 그리고 인파로 가득 찬 현대식의 백화점이 우리의 오늘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그게 우리의 바램 입니다. 특히 외국인이 보아주길 바라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시각은 그런 외형적인 것에는 별 관심도 없고, 그것을 발전했다는 증거로 봐 주지도 않습니다. 르포는 신림동의 달동네나 서울의 뒷골목의 러브호텔, 그리고 왜 한국은 아직도 아기수출을 계속하고 있는지...등, 이런 어두운 면을 우리 자신이 그러는 것보다 더 들추고 다닙니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점이 불만이지요. 더 좋은 곳도 많고 더 좋은 면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감추고 싶은 부분만 들추고 다니면서, 또 그것을 공중파에서 방영을 하는지.. 물론 이런 점은 프랑스 사람이 한국은 아직도 못사는 변방의 작은 나라라고 생각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모래 위에 쌓은 그럴 듯한 성에는 관심이 없고, 그 모래 속을 파고 들어가는 그들의 태도에 나는 가끔 공감을 하곤 합니다. 그 모래 위의 성이 아무리 멋있고, 현대적이고, 또 '있어'보인다고 하더라도, 그 성을 받치고 있는 사회 내부의 모습이 모래와 같다면 그것의 멸망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혹은 높이 쌓은 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앞으로도 영원히 그 속의 모든 사람은 무너지는 성을 떠받치느라 아수라 장이 되어가든지.... 인류 역사의 지극히 당연한 원리를 우리만 빼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은 이미 후자가 되어있었는 지도 모르겠군요.

오늘 본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입양인 주인공도, 극 마지막에 이런 독백을 하더군요 : "1달간의 친부모를 찾기 위한 한국여행 후, 파리로 돌아온 첫날, 나의 양부모는 내게 고생했다면서 준비한 하얀 쌀밥을 내밀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밥 그릇을 식탁 저편으로 밀어 버렸다. 그리고 저편에 있던 스테이크를 집어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성공하고, 행복하라고 외국으로 등을 떠밀었던 그 아이들은, 영원히 한국인임을 거부하며 한국이란 땅을 혐오하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