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20020419

서구사회, 특히 프랑스 사회를 이야기할 때 정치적/사회적으로 체계가 잘 정리된 사회라고 한다. 한국의 언론과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가 모방할 수 있는 선진사회로 항상 예를 드는 곳이 이곳 프랑스식 정치/사회 체계인 점을 상기해보면, 뭔가 일리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필자에게 ‘무슨 이유로 프랑스 사회에 정치/사회 체제가 잘 구축이 되었는가 ?'라고 물어본다면, 필자는 서슴지않고 ‘ 혁명을 많이 겪어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피의 역사를 간과하고 프랑스의 근,현대 사회 형성과정을 이야기할 수는 없단 말이다. 수많은 운동과 혁명, 그 이면에 단두대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상가와 문화인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의 겉 껍데기만 본다면 부러울 수도 있으리라...

반면 필자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유독 다른 유럽사회에 비해, (외부 요인적 전쟁요소를 제외하고) , 사회 내부적 변혁을 이 프랑스 사회는 왜 이리도 많이 겪고 있었는지, 그 문화적 배경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프랑스의 정신적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런 자문 후 별스런 상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묘한 생활속의 경험이 있었다.

상상해 보라! 당신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물어볼 때 ‘..을 할 수 있습니까 ?' 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가 아니면 ‘..을 할 수 없습니까 ?'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가 ?. 불어로는 ‘Est-ce que c'est interdit ? (금지되어 있었습니까 ?) ' 혹은 ‘Est-ce que c'est permis ?' (허가되어 있었습니까 ?) '의 문제이다.

이 프랑스 사회에 살면서, 가장 많이 쓰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금지되어 있습니까 ?'라는 말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낯익은 사람이 아니라면 항상 그 사람에게 해야 되는 말 중 하나가 이 말이다. 이 문화적으로, 사상적으로 자유롭다 라고 여겨지는 나라에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이 ‘금지되어 있습니까 ?'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묘한 모순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 그 금지된 것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이 허가되어 있다 ! '라는 또 다른 내면을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학교에서 건 관공서에서 건 공공장소에서 건, ‘금지'된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네 마음대로'라는 프랑스 인의 정신적 정체성을 깨닫는 순간, 그것이 그들의 수많은 혁명과 사회/문화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허가되어 있습니까 ?'란 말을 항상 입에 달고 다녀야 되는 사회라면, 역설적으로 ‘허가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라는 의미가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북한의 압록강변 중국과의 국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강 하나만 건너면 중국으로 도망갈 수 있는 상황, 국경의 보초를 서고 있는 총부리를 겨눈 군인에게 민간인이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

‘나 이 강물에 발만 담구어도 될까요 ?'일까
아니면 ‘이 강물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까 ?' 일까 .

할 수 있는 것을 묻는 사회인가, 할 수 없는 것을 묻는 사회인가. 내가 살았던 아시아의 동쪽 땅에서는. 무엇을 물어보고 살았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