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20020602

2002 한국/일본 월드컵의 열기가 전세계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요즘, 그 열기에 이 곳 프랑스도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시차관계로 유럽에서는 업무시간인 오전 9시-오후 3시 사이에 주로 경기가 중계되기 때문에, 유명한 통계기관에서는 월드컵 기간중 업무 태만/결근 때문에 유럽의 올해 경제 성장률까지 저하되리라는 예상을 내어놓고 있을 정도로 그 열기는 뜨겁다.

다른 나라가 이러니, 자국 대표팀이 활기를 보이는 한국의 분위기가 그렇게 뜨거운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리다. 외국에 살아도 요즘은 한국이 선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인터넷으로 여러 신문을 뒤져보며 어떻게 싸웠는지 어떤 선수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풀곤한다. (개인적으로 88 서울 올림픽때는 대학입시를 압둔 고3이란 신분 때문에 단 한 경기도 본 기억이 없는데, 이번 월드컵은 다른 나라에서 학기말 논문마감과 시험에 월드컵은 정말 딴!!!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참 저주받은 운명이다.)

어쩌면 한국에 있었을 때는 이 점을 못느끼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언론의 가장 '특이한' 점을...

기쁜 마음에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기사들은 보고 있자니, 문득 참 '외신보도'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외국에서 일어난 일을 통신사를 통해서 전송받은 '진짜 외신'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외국의 방송사와 신문사는 이렇게 방송했다는 인용 외신말이다.

한국이 챔피언 프랑스를 상대로 거의 이길뻔한 게임을 한, 지난 5월 26일짜 인터넷 신문들을 보면, 현지 외국인 기자들은 이렇게 말했고, 외국의 유명 방송사는 이렇게 보도했고, 외국의 중요 신문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라는 인용 기사가 아마도 전체 기사의 반 이상은 차지했을 것이다. 아예 어떤 인터넷 신문은 관련 외신기사 (대부분 한국의 선전을 언급한 것만 열심히 모아서) 로 특집을 꾸미기도 했다. 물론 그 기사가 약속한 제 시간에 올라오지 않자, 게시판은 그 글을 종용하는 글로 가득체워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아마도 혼자서 자화자찬하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보다. 남들도 '잘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듣고 싶나보다.

남의 눈.

한국인의 마음속에 이것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또 있을까? 자기가 잘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이 잘했다라고 칭찬해줄 때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우리.

필요 없어도 남의 눈 때문에 좋은 차를 타야하는 우리, 잠은 한시간 못자더라도 남의 눈 때문에 한시간 먼저 일어나서 졸린 눈위에 마스카라를 칠해야 하는 우리, 남의 눈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넥타이로 목들 죄어야 하는 우리, 남의 눈 때문에 월드컵 경기중에는 노동자의 개별시위마저도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우리, 남의 눈 때문에 인구 2만명이 안되는 서귀포에 4만 수용의 축구 전용구장을 건설해야하는 우리...

이 자의식 강한 프랑스에 사는 동안, 동방의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우리 프랑스를 이렇게 칭찬했다...라는 한 조각의 '외신'기사를 볼수만 있다면 이런 자괴감은 덜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