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제목을 ‘실패'라고 했으니 본격적인 비평은 지금부터인가. 하룻밤 강아지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격언도 있지만, 이 글의 초미에 이미 밝혔듯이 필자는 위대한 작품과 거장의 인생에 대한 칭송으로 이 연재를 계속할 의향은 없다.

유명한 비평가와 학자들의 저서를 조금씩 인용하면서 그들의 분석을 조금더 세련되게 번역하는 안전한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비판과 반론의 두려움을 무릅쓰는 것도, 그리고 오늘날 그의 이론이 왜 비판받고 수정되고 있는지 '나의 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이란 시대에 사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사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비판을 통해서 배울 것이 더 많은 것 아닌가.

그의 건축 5원칙부터 시작을 했으니, 다시 이 원칙의 모순을 밝혀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자유로운 평면과 자유로운 벽, 그리고 구조의 한계를 떠난 입면... 이 모두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해보면 너무나 매혹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멋진 개념이 르꼬르뷔지에 자신은 물론, 그 이후의 영향을 받을 건축가에게 '과잉계획'을 하도록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의아해 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건축가는 그가 모든 것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류의 직업인이다. 건축물 계획부터 실내 공간 계획, 가구배치, 심지어는 실내에 놓아지는 가구선택과 벽지의 색깔까지까지... 사실 지금 와서 건축가에겐 일반적인 희망사항이 되었지만, 자신이 계획한 건축물 내에 어울리는 실내,외의 모든 사물의 선정과 배치까지 관여하여야 한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 목표는 최대한의 일관된 통합체를 이루기 위한, 건축가의 바램에서 출발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어떤 문제가 있느냐고? 필자의 생각엔 이것이 종종 과잉 계획으로 가는 근본적 이유이다. 말하자면 사용자가 자신의 공간에 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정해보자. 당신이 이사 갈 새 집에 어떤 사람이 가구부터 침대 시트까지 전부 설치를 해 놓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과연 당신은 그 방에 정이 느껴질까? (한국의 한 티브 프로그램에서는 가난하고 사연있는 가정을 선정해 1주일 만에 그럴 듯하게 개조해주는 것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후 그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차 찾아갔을 때 설치했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며 프로그램에서는 꽤 즐거워 했다. 유지가 잘 되고 있다며... 1년이 지났는데도 사용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못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창조를 해내는' 직능인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사용자(감상자)에게 개입할것(상상할것)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손을 대기가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상태라면, 작품의 결과가 멋진 영화나 사진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사용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이란 '사용자의 행위 누적'에 의해 비로서 진짜 집이 되는 것이 아닌가. '작가' 건축가의 등장으로 이런 문제는 점점 더 심해지는 면이 있다.

이 점에서 바로 현재 네덜랜드 건축가 램쿨하스(Rem Koolhaas)의 단순하고 함축적인 공간 언어가 사용자에게 역으로 '먹히는' 이유도 엿볼 수 있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모르고 놓아 둔 것이 아니라 알지만 절제를 한 것이다. 이것이 어렵다는 것, 아마 모두가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램 쿨하스의 습작시절 (OMA 시절) , 그가 연구하고 있던 이론적 토대들을 주목을 한다면,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있다.

‘ ....중략... 건축은 일상 생활의 세트를 창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문학, 심리학 등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써 그 내용물을 한정해야 하며, 모든 가능한 레벨에 인간 활동의 배열을 하여 대본이 없는 메트로폴리탄 엑스트라를 위하여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것.... / 정신착란증의 뉴욕 , 1987, 태림 문화사, P7'

...이라고 그는 위험하게 보일 정도의 이론적 시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사용자가 선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그 가정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MicroSoft사의 Windows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후 그가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다행히도 보일 정도로는 이러한 시도가 목격되지는 않는다. 그는 이미 이론을 뛰어넘어 현실에서 참아야 할 때를 알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비로소 램 쿨하스를 다른 건축가들과 구분하게 하는 장점이다.

그런데 자유로운 평면 등이 이 과잉설계와 구체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자유 벽 체계는 사용자의 동선과 시선뿐 아니라, 사고방식, 사용자들간의 관계 (인간관계를 포함해서) , 그리고 설치물의 제어까지도 너무 쉽게 이르게 하는 측면이 강하다. 심지어는 붙박이장 같은 것도 건축가에게는 너무나 쉽게 일종의 벽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용자는 그의 의지대로 자신의 공간에 무언가를 설치하려 할 때, 역설적으로 너무나 부담스러워 지는 상황에 종종 처하게 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를 손댈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자주 처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은 자유로워 졌기 때문에 생기는 건축가의 일종의 무의식적 횡포라고 할까? 특히 이런 측면은 건축가와 사용자 사이에 정신적, 문화적 코드가 상이할 경우, 특히 심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의 집안에는 사용자에게 필요해 보이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사용자가 자신의 집을 위해 할 것이 없다는 묘한 모순이 숨어있다.

또 자유평면에서 나오는 공간 상/하부 통합구성 (한 건물의 아래/위층) 은 여러 문제 중 채광이나 대공간 구성 등을 이유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에게는 인간관계의 문제가 대두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신도시 등에 일종의 유행처럼 지어지고 있는 전원주택등에서 시원시원한 실내 빈공간(Void Space)등이 많이 쓰이는데, 이것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 (예를 들어 조금마한 밀폐된 자신의 방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국의 노인) 들의 보이지 않는 정신적 충격이 대단하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또한 지역에 따라 건축의 보온, 단열, 방음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도 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겨울철의 평균온도가 영하에 접근하는 지역에서는 이 보이드 공간의 사용은 에너지사용면에서 '억지'이다. 공기의 대류 때문에 따뜻하게 난방된 공기가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고 자꾸 공중에만 머무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무의미한 이론 모방이 내가 생각하는 응용의 시대! 현대의 병폐이다. 분명 좋은 의미에서 시작한 자유로운 평면은, 이제 사용자의 2차원적인 동선 제어를 떠나, 정신적, 심리적인 부분까지 제어를 한다. 당신이 건축가로서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제어한다는 ‘패권주의적 자긍심'에서 벗어나, 누군가 여러분의 삶을 예측하고 제어를 해 놓은 공간에서 그의 프로그램대로 살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라! 과연 당신에게는 그것이 매혹적이고 애정이 넘치는 공간인가? 이런 부분을 나는 건축가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폭력'이라고까지 말하고 싶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 어려운 문제이다. 그 대안을 한마디 말로 한다는 것은... 그러나 결국은 ‘건축가의 양심과 자질'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튀기 위해!' 혹은 '남들과 다르기 위해!' 계획하는 건축물에 이런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더욱 농후해진다. 다수와의 ‘대화와 이해' 말고는 대안이 없는 것이다. 이 말속에 건축가가 일반적으로 가진 지나친 직업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자기 '작품'에 대한 과욕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종종 한국 근대사를 ‘나만 잘났다!'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얼룩져 놓았다고 비난하는 우리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을 종종 느낀다. 자신이 계획하는 건물을 교수나 동료나 혹은 클라이언트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행하는 편협한 주장과 자신의 계획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에서 출발하는 투시도나 다이어그램 등을 옆에서 볼 때, 왜 나는 자꾸 그 놈의 ‘혼자 튀고자 하는 욕구'에 대해 반감이 들까?

이곳에서 경험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다리로 한번 해 보자. 한참 프랑스어 연수를 하고 있던 시절, 시간이 꽤 많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의 건축 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가졌었다. 하나의 건축물이 이루어지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보면, 그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 좀더 잘 보인다고 믿었으니... 지방자치가 오래 전부터 잘 이루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대규모 건축에 대한 설계경기나 계획심의 등이 잘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고, 가끔 내가 살고 있던 구청에 가서 지금 진행되는 구내의 설계나 공사에 대한 공고나 심의회를 보는 것이 하나의 버릇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 구내에 시립 스포츠 센터를 설계 경기한다는 공고를 보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라 처음부터 잘 관찰하기로 했다.

초기 계획안부터 건축가는 예산 집행을 책임진 공무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공청회에 직접 출석해서, 설계가 진행되는 몇 개월 동안 매주 한번씩 설명과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 잘난 대학교수 앞도 아니고, 그 높은 공무원에게도 아니고, 동네의 치정배, 노인, 장애인, 어린이, 주부들 앞에서 건축의 배치 계획부터, 상세실 계획까지 약 5개월간을 매주 질문 받고, 다음 주에 대안을 이야기하고 하는 식으로 설계와 공청회를 함께 진행하였다.

나는 이 기간동안 너무나 많은 문화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구청 건축과에서 얼마의 돈 봉투와 건축사의 도장만으로 지어지는 건축문화에 익숙해있던 나로서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나는 "그래서 한국 건축은 안돼 !" 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원래 토론과 타협을 좋아하는 프랑스의 문화에도 기인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자리에서의 건축가의 태도에 나는 많은 교훈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포츠 센터가 지어지는 대지 맞은 편 빵집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채광 문제로 불평을 하는 것도, 자기는 "미끄럼틀이 있는 수영장이 좋다"라고 요구하는 어린 소녀에게도, "꼭 에어로빅 센터에 사우나 실을 넣어 달라"는 비만인 중년 부인에게도, 자상히 귀를 기울이고, 대안을 함께 논하는 그 건축가에게 말이다. 이런 건축가들이 많아서 프랑스의 현대건축은 아직도 르 꼬르뷔제 뒷다리만 잡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이곳에서 대안은 그것이었다. 부작용이 없을 순 없지만, 최소화하려는 노력.

그런 말이 있다. ‘천재 1명의 독단 보단, 바보 100명의 중지가 더 낫다.'

그냥 웃고 지나칠 말은 아닌 것 같다. 시대를 불문하고 건축은 건축가의 것만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