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상을 설명하는 이유 중에 가장 설득력을 가지는 주장은, 아직도 "입면은 공간에 종속된 개념"이라는 근대(기능)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기능의 배분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기 시작함으로써 건축행위를 시작하는 현대 건축가들의 보편화된 작업방식이, 이제는 지나칠 정도로 입면은 이미 만들어진 공간을 덮어쌓기만 하면 되는 종속적인 존재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첫 번째 예를 들 '묻혀진 파사드의 존재'에 대한 흥미로운 담론거리를 제시하고 있는 사람은 아이러닉 하게도 다름 아닌 "근대 공간 기능주의"의 원흉(?). 르꼬르뷔지에의 지적에서 부터이다.
    

르꼬르뷔지에는 존재할 수 있는 다양한 건축 구성방식의 유형에 대해 명쾌하고 정리된 카테고리를 이미 제시하고 있다. 4가지로 제시되는 이 분류에는 평면과 구조가 어떤 관계를 이루면서 유형을 달리할 수 있는 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 설명은 평면의 성격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설명 속에서 우리는 입면의 다양한 (그리고 오늘날도 유효한) 전략 또한 살펴볼 수 있다.

	(a) Maison La Roche-Jeanneret
	(b) Villa Stein, France
	(c) Villa at Carthage, Tunisia
	(d) Villa Savoye, France
Four Studies of the potentials of the 'Five Points', 1929

점층적/부가적 방식 : 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필요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덧붙이고 돌출 시키면서 전체 메스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즉 건축가의 작업 방식은 어떤 중요한 지점 (대지의 중요한 지점이나 혹은 그의 개념의 핵이 되는 도안상의 시작점) 부터 시작하여 매스를 부가하면서 건물을 확장하는 경우가 되기 쉽다. 건물을 지을 부지가 여유가 있을 때, 그리고 주변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때 흔히 선호되는 이 구성 수법은, 평면간의 관계와 주변입지와의 관계에 따라 입면의 중요도 또한 결정된다. 이 경우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특히 고려하게 되고, 건물자체도 건물에 부속된 야외공간을 만드는데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면의 외관은 외부에서 보이는 '장식적 성향'을 띄는 경우가 흔히 있다.

또한 이런 경우 각각의 공간이 각각의 자신만의 메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구부 (창호)의 형태나 위치 또한 각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전략으로 구성된다. 이 방식이 흥미로운 것은 또한 아래의 다른 세 가지의 방식에 비해 기하학적 엄격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즉 입면 개념은 공간 개념에 종속되기는 하나, 입면의 언어는 공간 구성의 자유 만큼 결과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할 수 있는 것이다.

© www.e-architekt.cz

[Maison La Roche-Jeanneret]의 모형을 본다. 각각의 메스는 다소 자유롭게 서로 연결되고 필요에 따라 덧붙혀진 모양이다. 입면 구성 또한 조형적인 엄격성에서 벗어나 각 공간과 외부공간과의 필요성(시야, 채광)에 따라 별다른 제약없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아마도 한번도 예로써 회자된 적은 없지만, 부가적 건축구성의 명쾌한 예는 마르세이유 [단위주거]의 옥상정원 시설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치원, 체육관 등 주민 편의 시설로 구성된 옥상정원에서는 다른 어떤 대지보다도 대지 자체가 주는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냥 '마음대로 놓기만 하면 되는 수준'인 것이다. 대지 조건의 너그럼움과 평면구성의 자유로움은 곧바로 입면구성의 다양함으로 연결되고 있다. 옥상을 자세히 보라! 이 작은 건물에 이렇게 다양한 입면언어가 쓰여지고 있는 예는 흔치 않다.

순수한 입면체 : 르꼬르뷔지에는 재미있게도 "가장 어려운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 (어렵다는 것은 특히 평면을 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복잡한 도심지 내에서 도시 법규나 자연 여건등 주변환경에 의해 외부 메스의 한계 용적이 프로젝트 시작 전에 규정 되어 버리는 경우나, 작가주의 관점으로 평면 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전에 외부의 체적과 형상을 먼저 건축가가 규정해버리는 경우이다 . 평면은 외부입면의 용적 테두리 내부에서 ‘해결되는 방식' 으로 구성되며 이 경우 입면은 프로젝트의 우선권을 점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빈번하다 .

이 방식이 특히 어려운 이유는 평면 구성의 난해함 뿐만이 아니다. 입면 또한 이미 정해진 사면체 표면 내에서 해결하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강해지므로, 이런 경우 건축가 자신도 모르게 엄격한 조형적 기하학에 기대려고 하는 심리가 유난히 강해진다는 점이다.

© www.laboratorio1.unict.it

르꼬르뷔지에의 초기작품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던 독자라면 이 [가르슈 주택]의 입면에 그려져있던 복잡한 기하학적 도안을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마우스로 이 입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황금비례는 몇 가지나 있는지 그려보라. 엄격한 순수 입방체에서는 이상하리 만큼 수학적, 기하학적 이론에 기대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왜 그럴까?

© Detail 1999/05

독일의 Ingolstadt시에 최근 완공된 Fink & Jocher의 Development Centre의 입면을 시간별로 본다. 정제된 메스속에서 건축가는 시간에 의해 불균일하게 변해가는 각각의 입면모듈의 디테일 처리에 집중했다. 많은 부분 미학적 부분에 할애되는 이 디테일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엄격한 입면체 구성에서는 이렇게 입면 표피의 처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작업들을 흔히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기하학에 메달리는 습성, 부분적 디테일에 몰두하는 습성. 어딘가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자유로운 간막이 : 이 방식에 대해서 순수한 입면체와는 반대로 르꼬르뷔지에는 " 아주 쉬운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 즉 도미노 이론에 충실하게 일단 구조체 (바닥과 기둥) 을 정의해 놓으면 나머지 벽과 입면은 단순히 내부 평면을 보호하는 임무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입면은 평면 개념속에 종속되어 버리므로, 외부표피로써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건축가의 주의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구조에 의해 정해진 바닥의 경계 내에서 평면이 구성되므로 외벽은 위층의 바닥이 만드는 '그림자에 묻혀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입면 그 자체의 존재감은 약화되거나 사라지는 현상이 이 방식에 특히 흥미로운 특징이다.

© www.mirror.syr.edu

튀지니에 건설된 [Villa Carthage]의 입면이다. 르꼬르뷔지에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으로 도미노 이론을 지능적으로 응용한다. 기둥과 바닥판을 먼저 건설한 뒤 모든 기능들은 바닥선 내부로 후퇴시켜 입면이 뜨거운 태양빛에 직접 닫는 면을 최소화 했다. 다시 말해 모든 실들을 그림자 속에 놓았다는 것이다. 입면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처리는 눈에 띄이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메스와 바닥판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놀이'는 눈여겨 볼 만 하다.

절충된 입면체 : 위의 세가지 형태가 혼합되고 서로 타협된 방식으로 대표적인 예는 [빌라 사보아]이다 . 프로젝트의 시작은 예측된 순수 입방체에서 출발하지만 필요에 따라 내부가 관입되거나 외부로 돌출되는 등 응용의 범위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하다 . 물론 입면 또한 평면에 종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다 .

[빌라 사보아]는 절충식 건축구성법의 가장 훌륭한 예 중 하나이다. 전체 외관은 순수한 입면체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자유롭게 떠있는 지상층, 공중정원을 구성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체적을 덜어낸 2층, 시야의 흐름과 전체 메스의 균형을 이끄는 옥상의 파동벽 등에서, 위에 예로든 세 가지 모든 방식이 응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면 또한 이런 관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순수한 입방체'의 영향을 받는 2층의 외관 입면은 기하학적이고 절제되어 있다. 그러나 내부 공중정원과 그 주변의 입면은 마치 '부가적 구성법'의 자유로운 입면이 이곳에 함께 응용된 것처럼 보인다.

[빌라 사보아]가 이 관점에 있어서 훌륭한 표본 쯤 된다고 한다면, 관점이 무르익어 꽃을 피운 것은 [라뚤레트 수도원]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ㅁ자로 구성된 전체 건물군의 외부면은 상대적으로 모듈에 의한 다소 엄격한 입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순수한 입방체'의 구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내부 중정쪽으로 들어와보면 이야기가 전혀 틀려진다. '부가적 구성'의 그것처럼 모든 메스들은 망설이지 않고 필요한 대로 자신이 필요한 입면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