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파리의 정원은 열리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했다. 잠깐의 망설임뒤에 그러나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 이다. 이 말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가까운 역사속으로 되돌아가자.
글 시작에 르꼬르뷔지에의 '열린 도시'가 파리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잠깐 언급했다. 그의 생전에는 몽상가적 취급을 받았던 '블록의 도시'라는 개념이, 그가 죽고 60년대 후반부터 갑자기 유행처럼 파리를 뒤덮기 시작한다. 오구스트 페레가 불을 지핀 오스만식 도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댐이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다.
다시한번 상기하지만 블록의 도시는 길의 도시와는 전혀 상반되는 개념이다. 정원과 길은 공공화가 되어 도시로 열리게 되고, 건물은 공공의 통행과 시민의 휴식을 위해 '공중으로' 띄워졌다. 그리고 아주 잠시동안 르꼬르뷔지에가 상상했던 것처럼, 마침내 대지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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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르꼬르뷔지에가 생각했던 인간 세상에 비해, 실제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리 단순한 곳만은 아니었는가.
'대지를 인간에게!'라는 슬로건은 좀 과장하자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적 개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땅은 공공의 것이니 개인 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개인적 소유욕이 강한 이곳 프랑스 땅에서 이 개념이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관리의 문제, 두 번째는 보안의 문제이다.
굳이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대지는 공공의 소유이니 즐기기도 공공이 즐기지만, 유지/관리/청소도 공공이 해야한다. 그러나 즐기고 이용하고 싶어하는 공공은 항상 존재하지만, 자기돈을 들여서 '남의 땅'까지 청소하고 싶은 공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즐기고 싶은 공공은 누군지 쉽게 정의할 수 있지만 청소하고 싶은 공공을 정의하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지 않는가.
매일 어떤 건물의 필로티를 지나 통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유지관리비의 책임을 지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 건물에 사는 거주민에게 관리를 책임을 맡기기도, "내가 아무리 청소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더럽히는데..." 라는 이유있는 불만을 무슨 논리로 설득할 것인가. 그렇다고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정원과 길의 관리와 청소를 시가 떠맡기는 더더욱 불가능하지 않은가.
두 번째 문제는 좀더 심각하다. 모든 건물이 자신의 정원으로만 열리고, 길쪽으로 닫혀있었을 때는 그런 문제를 경험하지 못했는데, 양쪽으로 다 열리고 보니 각 주거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도둑의 위험, 소음에의 노출, 그리고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이런 불안감들은 안락하고 안정적인 주거를 원하던 도시 부르주와 수요자들로 하여금 가방을 꾸리게 만들었고, 그들이 떠나간 빈자리에는 도시 빈민이나 가난한 외국계 이주민이 차지하게 된다. 거대한 꿈과 이상이 이런식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경험하며, 파리는 20여년만에 결국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인정하게 된다. 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공중으로 뜨던 건물들이 다시 땅으로 내려앉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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