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게 말하자면 필자의 경우는 이 두 가지 경우에 다 해당한다고 고백해야 될 것 같다. 지식이 모자란다면 더힘껏 발로 뛰면서 찾고 보고 분석하고 해야 할텐데, 관심이 다른 곳에 치우쳐 있으니 이 분야에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수년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치곤 굉장히 거창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장기간의 게으름을 극복하고 다시 연재를 계속하게 한 동기는 그 동안 필자가 바람(?)을 피웠던 몇가지 다른 분야 덕분이다. 그 분야의 관심이 오늘 이야기할 필로티에 대한 진짜 정체와 의미를 깨닫게 해준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는 필로티이다. 앞선 글에서 개론적인 리뷰가 있었지만 오늘은 이 필로티의 탄생 배경과 프랑스와 기타 유럽 도시에서 어떻게 필로티란 개념이 이입되고 성장하고 또 변화했는지. 굳이 르꼬르뷔지에의 몇 개 건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관점을 넓혀 몇 십 년간의 필로티의 '일생'에 대한 담론을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는 르꼬르뷔지에의 [현대건축의 5원칙]이란 개념을 단순히 도미노 구조의 논리적 결과물로만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유로운 평면이나 수평창같은 것은 건축 내부구성적 관점에 국한된 면이 많기 때문에 도미노 이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만, 옥상정원이나 필로티같은 것들은 곰곰히 짚어보면 도미노 구조와 필연적인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즉 콘크리트 도미노 구조가 아니라도 옥상정원과 필로티의 건설은 필요하기만 하다면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며, 또한 도미노 구조라고 하더라도 필로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공사의 난위도를 비롯해 난점이 너무 많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은 르꼬르뷔지에가 언급했던 몇가지 사실에서도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최초로 필로티가 도입된 1922년 양산형 [시트로엥 주택계획] ¹ 때 언급한 사실인데, " 철근콘크리트 방식(도미노 구조)덕에 건물전체를 지면에서 들여올려 건물의 토지전체를 다시 한번 획득하고 건축공간의 웅변성을 자아낸다" ² 는 그의 주장에 비해, 그 전까지 일반적이었던 조적식 구조로도 지상층에 기능을 넣지 않고 비워 버려 필로티를 획득하는 것이 전면적은 아니라도 부분적이라도 가능하다는 점은 회자되지 않고 있다. 또한 당시 유럽에서도 부분적으로 지어지고 있었던 목조식 구조나 철골구조는 필로티를 좀더 쉽게 만들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1: Citroen이란 명칭은 프랑스의 유명한 같은 명칭의 자동자 메이커와 같은 것이다. 자동차처럼 조립과 양산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같은 이름을 주택에 붙혔다고 한다.
2: 르꼬르뷔지에 전작품집 OEUVRE COMPLETE 1권, 시트로엥 주택 편에서 인용

이것이 르꼬르뷔지에 건축에서 최초로 필로티가 도입된 [시트로앵 주택]의 모형이다. 들여 올려진 건물, 다시 획득된 지면! 이 지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기능이 개인과 공공에게 부여된다는 의미이다. 최초 발상은 1922년이었고, 실제로 근대적 필로티가 실현된 것은 몇 년 후 독일의 스튜트가르트 아이젠호프에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진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은 "필로티로 건물을 들어올려 지면을 획득한다" 라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왜 획득하려고 했는가" 이다. 특히 르꼬르뷔지에가 활동하던 시기는 지금처럼 지가가 비싸거나 주차공간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토지에 대한 여유와 사용성에 관한 관용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시기인데, 높아지는 건축 공사비에도 불구하고 굳이 땅을 비우고 건물을 띄운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지 않은가?

필자도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곳 유럽의 도시적 역사와 콘텍스트 등 보충 지식이 필요했다. 조바심내는 독자들을 위해 결론부터 간략하게 말한다면 옥상정원과 필로티라는 개념은 르꼬르뷔지에의 건축관이 아니라 도시관에 연결되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파리의 별장 계획안

지중해변의 별장 계획안

아이젠호프 주택

시트로앵 주택 이후의 필로티 시스템이 채용된 몇몇 계획안을 본다. [파리의 별장]에서는 필로티가 정원의 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중해변의 별장]에서는 수면위에 건물을 부유케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결국 실현된 [아이젠호프 주택]에서는 '비워진' 홀로 그리고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필로티의 3가지 사용법이 이미 제시된 것이다. (그림은 OEUVRE COMPLETE 1에서 인용)